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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컬럼

J. C. 페니

Author
admin
Date
2013-11-25 16:28
Views
285
J. C. 페니

 

 

J. C. 페니는 미국에서는 잘 알려진 백화점입니다. 

이 백화점을 세운 제임스 캐시 페니(James Cash Penney)의 이름이 곧 회사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페니는 1875년 미주리 주 해밀턴 근방의 한 농장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1902년에 와이오밍의 케머러라는 곳에 첫 가게인 포목점을 열었는데 깊이 있는 신앙인이었던 

그는 가게 이름을 ‘황금률 가게’(Golden Rule Store)라고 지었습니다. 마태복음의 황금률은 그의 삶을 

이끄는 원리였기 때문이지요. 그의 사업은 놀랍게 성장해서 10년 만에 30개로 상점이 늘어났고 연간 

매출액은 200만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당시로는 기적적인 성장이었습니다.

 

그는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십일조를 드렸는데 그의 사업이 번창하자 헌금도 자연히 불어났습니다. 

하지만 페니는 십일조를 헌금으로 드리는 것에 멈추지 않았습니다. 1971년 페니가 세상을 떠날 즈음에는 

수입의 90%가량을 헌금으로 드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신실한 사업가에게도 고난의 시간은 있었습니다.

그는 두 번이나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고 그 때 마다 갚은 좌절에 고통스러워해야 했습니다. 1929년 초, 

페니는 J.C. 페니 백화점을 설립해 단박에 전국에 1,400개의 백화점을 가진 큰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모두가 페니 백화점이 최고의 백화점이 되리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같은 해 10월 

주식 시장이 무너지며 세계 대 공황이 찾아왔습니다. 페니는 하루만에 4,000만 달러를 잃어버렸고 

빚을 갚기 위해 거의 모든 자산을 팔아야만 했습니다. 54세의 페니는 성공한 사업가에서 하루 아침에 

무일푼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페니는 근심과 불면증으로 고통스러운 매일을 보내야 했고 약을 먹어도 병에는 차도가 없었습니다. 

죽을 때가 가까웠다고 생각한 페니는 미시간의 배틀 크릭에 있는 요양소에 들어갔습니다. 우리로 말하면 

기독교 기관에서 운영하는 기도원을 겸한 치료소와 같은 곳 이었습니다. 어느 날 밤 페니는 마지막이 

가깝다는 생각이 들어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작별 편지를 써 놓은 후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아침이 되자 

그는 병원 예배당에서 들리는 찬송소리에 잠이 깨었습니다.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우리 찬송가 382장 이었습니다.

 

페니는 일어나 예배당으로 가서 뒷좌석에 앉아 그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몸과 영혼이 새로워지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며칠 후 그는 짐을 싸 집으로 돌아왔고 어려움을 극복하고 사업을 다시 일으켜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성공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끝까지 믿음의 길에 서 있는 것, 그리고 하나님이 은혜를 

주실 때 그 것을 자신의 것으로 하는 영적 민감성을 잃지 않는다면 어떤 고난이나 역경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오늘 예배당을 채우는 또 다른 찬송과 말씀이 여러분을 다시 일으키는 은혜의 도구가 되도록 마음을 여십시오. 

어쩌면 또 다른 욥이, 또 다른 페니가 탄생하는 시간일지 모르지 않습니까?

 

 

   권혁천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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